미얀마 쿠데타 이유 총정리
현재 미얀마는 군부 쿠데타가 발생하여 많은 학생 시위대들이 죽고 있습니다. 쿠데타의 주범인 흘라잉 사령관은 얼마 전 아세안 7개국 정상들 앞에서 ‘폭력 중단’을 약속하였지만 현지에서는 아직도 유혈 진압이 이어져 사망자가 속출되고 있습니다. 앞서 최근 군경에게 체포된 미얀마 청년 지도자 ‘리틀 판다’ 역시 현재 경관 살해 등의 혐의로 최대 징역 28년형에 선고될 위기에 처했는데요.
이에 따라 세계 각국에서 미얀마를 돕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군사 쿠데타가 발생했던 나라로 누구보다도 이에 대한 아픔을 잘 알고 있는 나라이기도 한데요. 오늘은 미얀마 쿠데타 이유 그리고 기타 내용들에 대해 한번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목차 1. 미얀마 역사 2. 미얀마 쿠데타 이유 3. 미얀마 아웅산 수치 4. 미얀마 인권 5. 미얀마 쿠데타 전망 |
1. 미얀마 역사
미얀마 연방공화국은 동남아시아의 국가입니다. 북서쪽으로는 방글라데시와 인도와 인접하고 있으며 북동쪽으로는 중화 인민공화국, 동쪽과 남동쪽으로는 라오스와 태국이 접해 있습니다. 미얀마는 동남아시아 본토 내에서 가장 면적이 큰 국가이며 남쪽과 남서쪽에는 안다만 해와 벵골만이 위치합니다. 미얀마의 수도는 네피도이고 최대 도시는 양곤입니다. 인구는 2017년 기준 5400만명으로 집계됩니다.
고대 미얀마에서는 북부에는 퓨족이 거주하였으며 남부에는 몬족이 모여 왕국들을 이루고 살고 있었습니다. 9세기경 현재 미얀마의 주류를 이루는 민족인 버마족이 들어오게 되면서 버간 왕국을 세웠고 점차적으로 세력을 넓혀 나갔다고 합니다. 버마족은 언어와 상좌부 불교를 중심으로 버마 문화를 만들어 냈지만 이후 몽골족의 침입으로 인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그 위치에서 여러 소국들이 난립하여 패권을 다투었으며 16세기에 따웅우 왕조에 의해 통일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동남아 역사상 최대의 제국으로 군림하였으며 19세기 초반에는 꼰바웅 왕조가 현재의 미얀마 지역과 함께 마니푸르와 아삼 지역까지 통치하였습니다. 하지만 영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부터 점차 영국 동인도회사에 국권을 침탈당하기 시작했으며 결국에는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하였습니다.
2차 세계 대전 동안 일본 제국의 침략을 받아 지배를 받았으며 연합국에 의해 해방되어 1948년 독립을 쟁취했지만 1962년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 버마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의 독재가 시작되게 됩니다.
2. 미얀마 쿠데타 이유
미얀마는 독립 이후 버마족과 수적 열세인 소수민족들 간의 민족 분쟁으로 인해 긴 내전을 겪어왔으며 수많은 인권 탄압과 잔인한 학살들이 일어났습니다. 결국 2011년 군부가 2010년 총선의 결과를 수용하면서 군부 정권은 공식적으로 해산하였고 그 자리를 문민 정부가 들어서 민주주의의 기틀을 마련하였습니다. 이후 국부인 아웅 산의 딸인 아웅산 수치 등이 권력을 잡았고 이후 경제적 제재를 완화하고 외교 갈등을 해소하면서 상당한 진전을 거두게 됩니다.
2021년 발생한 미얀마 쿠데타 이유는 2015년 치러진 총선에서도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당이 상원과 하원 모두에서 다수당의 지위를 차지하는데 성공하여 민주주의를 굳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총선 결과에 반발한 군부가 민 아웅 흘라잉을 중심으로 결국 2021년 2월 1일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3. 미얀마 아웅산 수치
아웅산 수치는 2016년 미얀마의 실질적인 국가 원수인 국가고문겸 외교부 장관이자 소수 정당인 국민민주 연맹의 의장 겸 사무총장을 지냈습니다. 그녀는 실질적인 권력을 가지지 않았다고 전해지며 군부들의 로힝야족, 카렌족을 비롯한 일부 소수민족들 학살과 억압을 방조했다는 비판도 들었으며 2020년 총선에서 국민민주연맹의 거대 의석을 가지게 되어 이에 대한 군부의 반발로 2021년 2월 1일 군부 쿠데타로 실각되었습니다.
- 1945년 6월 19일 출생
- 델리 대학교 정치학 학사 학위
- 옥스퍼드 대학교 세인트 휴스 칼리지 경제학 석사 학위
- 마이클 에어리스와 결혼
- 1988년 민주화 운동 지도자로 부상
- 1989년 가택연금에 처함
- 1991년 노벨평화상 수상
- 1999년 남편 암으로 사망
- 2010년 가택연금 해제
- 2012년 미얀마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당선
- 2015년 총선에서 수치의 야당이 압승
- 2016년 3월 15일 틴초 대통령 당선
- 2021년 2월 1일 군부 쿠데타로 인해 윈 민 대통령과 함께 군에 의해 구금
4. 미얀마 인권
미얀마는 국제적으로 1962년부터 2010년까지 미얀마를 통치했던 군부가 세계 역사상 가장 극악무도하고 국민에 대한 통제가 심했던 정권들 중 하나라고 보고 합니다. 2012년 12월 오바마 정부의 인권특별보좌관이었던 사만다 파워는 떼인세인 대통령의 방미 직전에 미얀마에서는 여성과 아이들을 포함하여 민간인들을 상대로 한 심각한 인권 범죄가 자행되고 있다고 백악관 블로그에 적었을 정도라고 합니다.
UN 회원국들과 주요 인권 단체 들은 미얀마에서 자행되고 있는 대규모, 체계적인 범죄를 중단하라고 반복적으로 압박하고 있는데요. 2009년 11월에는 유엔 총회에서 군부에게 인권을 존중할 것 그리고 폭력을 멈출 것을 요구하였으며 국제법상의 인권을 충실하게 지킬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미얀마에는 쿠데타로 인한 시위대 유혈 진압과 더불어 강제 노동, 인신 매매, 아동 노동, 등이 상당히 만연해 있으며 소수민족들에 대한 탄압도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5. 미얀마 쿠데타 전망
미얀마 쿠데타 이유를 단편적으로 보면 군부가 잘 돌아가던 민주주의 정부를 무리하게 쿠데타로 무력화시킨 것으로 보여집니다. 하지만 상황이 그리 간단하지 않은데요. 미얀마는 군부가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하는 불완전한 민주화 구도에서 긴장과 협조를 반복하던 정부와 군부가 물밑 수 싸움 끝에 발생한 무력 진압 상황으로 주요 정치인들이 체포나 연금당하였고 정권 이양이 강제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이유는 미얀마 헌법부터가 쿠데타 이전 부터 미얀마 군부의 권한을 명시하고 있으며 군부에 도전할 만한 개별 무장세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당장 군부가 실질적인 주도권을 장악할 수밖에 없습니다. 설령 정치적으로 타협이 되어 주요 정치인들이 가택연금에서 풀린다고 하더라도 군부의 일방적인 정치 간섭을 막을 수 있는 개헌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똑같은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미얀마는 이름만 민주주의 인 것이며 꼭두각시 정부였다는 의미가 됩니다.
하지만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경우 군부의 강력한 탄압으로 실패할 것 처럼 보였지만 조금씩 반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미얀마는 다른 동남아의 국가들과는 다르게 미얀마 군부에 맞설만한 무력을 가진 세력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데요. 미얀마의 소수민족 반군세력들의 경우 민주주의 정부와 아웅산 수치를 지지하는 경향이 강하고 그들을 멸망시키려는 군부에 대한 반감이 깊다고 합니다.
요즘 민주주의 정부와 손을 잡은 카렌민족해방군과 카친독립군과 같은 반국세력들이 조금씩 군부를 상대로 선전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지난 23일에는 카친 독립군이 미얀마군 기지 10곳을 점령하고 미얀마군 1개 대대를 괴멸시키는 등 활약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상으로 미얀마 쿠데타 이유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미얀마 쿠데타와 앞으로의 횡보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과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저 역시 3년 전 미얀마 양곤을 방문했던 적이 있는데요. 제가 느꼈던 미얀마의 풍경과 사람들의 웃음은 당분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국제사회 또한 미얀마 쿠데타 사태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조속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데요.
하지만 민주주의 정부가 실권을 가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상당히 충격적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개헌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아직도 상당히 예민한 상황이 되고는 하는데요. 군사 쿠데타를 겪는 나라들이 많은 만큼 미얀마와 다른 나라들도 국민들이 주권을 갖는 민주주의 국가로 거듭나길 바랍니다. 우리나라 역시 5.18 민주화 운동에서 많은 시민들이 학살되었던 것처럼 이웃나라의 아픔을 보듬어 주고 정신적이거나 물질적인 응원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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